‘-43.8%’ 대 ‘144.6%’.
2000년 이후 한국전력 주가와 코스피지수의 상승 폭을 비교한 수치다. 2000년 1월 4일 3만6000원으로 시작한 한전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 2만200원으로 내려왔다. 코스피지수는 그사이 2.4배가량 올랐다. 1999년까지만 해도 시가총액 1위를 달리던 한전은 현재 29위까지 떨어진 상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의 이면에는 이처럼 만년 저평가에 시달리는 유틸리티·통신·금융 업종 기업들이 지수의 발목을 잡은 영향이 크다. 각종 ‘포퓰리즘’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고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치인 등이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되는 등 정부가 바뀔 때마다 경영 원칙이 휘둘린 탓이다. 한전은 국제 유가 오름세에도 정부가 요금 인상을 억누르고 할인 정책을 도입하면서 실적 악화에 시달려야 했다. 전 정부 때 ‘탈원전’ 정책도 이 회사 부실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적자가 쌓이면서 부채 규모가 200조원을 넘어섰다.
통신산업도 유독 국내 기업들의 저평가가 심했다. SK텔레콤(0.94배)과 KT(0.56배)가 PBR 1배 미만을 기록한 반면 미국 AT&T와 버라이즌은 각각 1.23배, 1.92배였다. 일본 최대 통신사업자인 일본전신전화(NTT)는 1.71배다.
전문가들은 국내 전력·통신·금융 기업들이 해외 대비 유독 저평가된 이유로 정부의 입김에 휘둘리는 ‘규제 산업’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오랜 기간 전기료 인상이 묶이며 적자가 누적된 한전이 대표적이다. 한전의 부채비율은 작년 3분기 기준 564%로 2019년 말 186.8%에서 세 배 넘게 늘었다.
이들 종목은 주가도 정부 정책이나 외부 요인에 따라 급변동하고 있다. 한전은 2022년 10월 적자 폭 확대가 예상되면서 한 달 만에 주가가 15% 넘게 하락했으나 11월 15일 정부가 전기료 구성항목인 기준연료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히자 다시 2주간 7.4%가량 올랐다.
통신사도 정부가 통신시장에 개입하며 주가가 오르내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작년 2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시장의 과점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발언하자 KT와 SK텔레콤 주가는 2월 말까지 각각 8.7%, 5.3% 하락했다.
한 증권사 통신 전문 애널리스트는 “최근에도 4월 총선을 앞두고 통신비 인하 압박이 거세졌다”며 “통신사 주가는 외부 정책에 쉽게 흔들리다 보니 실적과 무관하게 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정치권의 영향력이 강한 기업들은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 경영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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